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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저는 소분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지쳐있는데, 짐을 풀자마자 고기를 1인분씩 나누고 채소를 씻어서 지퍼백에 담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현관 앞에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냥 사 온 것들을 냉장고에 통째로 던져 넣고 나중에 꺼내서 쓰면 된다는 생각으로 2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2024년 9월 어느 일요일 저녁, 냉장고를 정리하다가 냉동실 깊숙이 박혀있던 소고기 600그램짜리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언제 산 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 고기는 냉동 화상이 심하게 와 있었고 결국 그대로 버렸습니다. 가격을 확인해 보니 1만 8천 원짜리였습니다. 그달 한 달 동안 버린 식재료를 전부 합산해 보니 4만 9천 원이었습니다. 그 숫자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귀찮다는 이유로 매달 5만 원 가까이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 나게 와닿았습니다.

이 글은 소분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 아닙니다. 소분이 귀찮아서 수차례 포기했던 제가 어떤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 기준을 낮춰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저처럼 소분의 필요성은 알지만 막상 실천이 안 돼서 고민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공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솔직하게 적어봅니다. 모든 내용은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사람마다 생활 패턴과 체력이 다르므로 참고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식재료 소분이 그렇게 하기 싫었던 진짜 이유 세 가지
소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안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냉동 보관하면 오래 쓸 수 있다는 것도, 미리 손질해 두면 평일에 편하다는 것도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실천이 안 됐는지, 제가 포기했던 이유를 솔직하게 되짚어보면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 번째는 장을 보고 돌아온 직후의 극심한 피로감이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마트를 다녀오면 이미 오전 시간이 절반 이상 날아가 있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소파에 쓰러지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밀려왔습니다. 그 상태에서 도마를 꺼내고 칼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소분에 대해 제가 가지고 있던 과도한 완벽주의였습니다. 유튜브에서 본 소분 영상들은 하나같이 깔끔하고 체계적이었습니다. 고기는 딱 100그램씩 랩으로 감싸고, 채소는 데쳐서 물기를 꼭 짜서 소분하고, 지퍼백에는 날짜와 내용물을 매직으로 적어두고. 그 영상들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해야 제대로 하는 거라는 강박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분을 시작하려면 시간도 충분해야 하고, 지퍼백도 넉넉히 있어야 하고, 매직도 있어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돼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조건들이 완벽하게 갖춰지는 날은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는 소분을 해도 결국 못 먹고 버리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생긴 무력감이었습니다. 열심히 1인분씩 나눠서 냉동실에 가득 채워뒀는데, 갑자기 야근이 연달아 이어지거나 몸이 안 좋아서 집밥을 전혀 못 먹는 주간이 생기면 그 정성스러운 소분 재료들이 고스란히 냉동실에서 한 달, 두 달을 버티다가 결국 냉동 화상이 와서 버려지는 상황이 반복됐습니다. 그럴 때마다 '소분을 해도 어차피 버리게 되는데 뭐하러 힘들게 하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다시 포기하게 됐습니다. 소분이 문제가 아니라 제 불규칙한 생활 패턴이 문제였는데, 그 사실을 당시에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완벽한 소분을 따라 하다 두 번 실패하고 배운 것
제가 소분을 처음 진지하게 시도했던 건 2023년 초였습니다. 유튜브에서 구독자 50만 명이 넘는 살림 채널의 소분 영상을 보고 감명받아, 그 주말에 마트에서 지퍼백 대용량 세트와 식품용 매직, 라벨 스티커까지 사서 총 1만 2천 원을 투자했습니다. 고기는 100그램씩 소분해서 날짜를 적고, 채소는 종류별로 씻어서 키친타올로 물기를 제거하고, 파는 송송 썰어서 냉동하는 작업을 3시간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냉동실이 가득 찼고 그날만큼은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2주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평일에 야근이 4일이나 이어지면서 집에서 밥을 거의 못 먹었고, 주말에는 피로가 쌓여 외식을 하게 됐습니다. 냉동실의 소분 재료들은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갔습니다. 3주 뒤에 냉동실을 열어보니 랩으로 감싼 고기들이 하나같이 냉동 화상이 와 있었고, 파는 서로 엉겨붙어 덩어리가 되어있었습니다. 결국 3시간의 노동과 1만 2천 원의 소모품 비용이 그대로 날아갔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역시 소분은 나한테 안 맞는다'였습니다.
두 번째 시도는 6개월 뒤였습니다. 이번에는 방식을 바꿔서 냉동이 아닌 냉장 소분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채소를 손질해서 밀폐 용기에 담아두고 3일 안에 소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 이틀은 편했습니다. 냉장고를 열면 손질된 재료가 있으니 요리 시간이 확실히 단축됐습니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갑자기 저녁 약속이 생겼고, 나흘째는 피자를 시켜 먹었습니다. 용기 안의 채소들은 닷새째 되는 날 물이 잔뜩 생기고 색이 변해 있었습니다. 두 번째 실패였습니다. 이때 저는 소분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제 생활 패턴의 불규칙성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게 만든 결정적 계기와 기준을 낮춘 순간
두 번의 실패 이후 소분을 완전히 포기하고 지내던 2024년 9월, 앞서 말했던 1만 8천 원짜리 소고기를 버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달 폐기 비용 4만 9천 원을 메모장에 적어두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방법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습니다. 핵심은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날짜 라벨도 없어도 되고, 100그램씩 정확히 나누지 않아도 되고, 채소를 데쳐서 물기를 꼭 짜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습니다. 그냥 사온 고기를 대충 반으로 나눠서 지퍼백 두 개에 넣고 냉동실에 던져 넣는 것, 그게 전부여도 된다고 기준을 극단적으로 낮췄습니다.
처음으로 그 방식을 적용한 날은 2024년 9월 둘째 주 토요일이었습니다. 마트에서 돌아와 소파에 잠깐 앉아 숨을 고른 뒤, 딱 5분만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삼겹살 500그램을 그냥 손으로 반 뚝 떼어서 지퍼백 두 개에 넣고, 나머지 채소들은 냉장고에 그대로 뒀습니다. 날짜도 안 적었고 데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고기만 반으로 나눴을 뿐인데 왠지 모르게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그 주에 냉동해 둔 삼겹살 반 봉지를 꺼내 먹었을 때, 냉동 화상 없이 신선한 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을 보며 처음으로 '이거 생각보다 되네'라는 작은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그 성취감이 생각보다 강력했습니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경험하고 나니, 다음 주 장보기에서도 부담 없이 고기 소분을 반복할 수 있었습니다. 3주가 지나자 고기 소분이 자연스러운 루틴이 됐고, 4주차에는 대파 한 단을 사 온 날 송송 썰어서 냉동하는 것까지 5분 안에 추가로 해낼 수 있었습니다. 잘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시작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진짜로 이해했습니다. 숫자로 손실을 확인한 뒤 완벽주의를 버리는 순간이 제 소분 습관의 진짜 출발점이었습니다.
지금도 유지하는 대충 해도 되는 나만의 소분 기준
지금 제가 유지하고 있는 소분 기준은 아주 단순합니다. 고기는 무조건 반으로 나눠서 지퍼백 두 개에 나눠 담고, 한 봉지는 냉장 이틀 안에 쓸 것, 나머지 한 봉지는 냉동합니다. 정확히 100그램을 맞추지 않습니다. 그냥 손으로 반 뚝 떼는 겁니다. 저울도 없고 날짜 라벨도 없습니다. 냉동한 날로부터 2주 안에 쓰면 된다는 것만 머릿속에 기억해 둡니다. 이 기준 하나만 지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3분입니다. 완벽한 소분이 아니어도 평일 요리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채소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채소 소분에 여전히 완벽하지 않습니다. 대파는 사 온 날 바로 썰어서 냉동하지만, 시금치나 부추처럼 손질이 번거로운 채소는 귀찮은 날에는 그냥 냉장고에 통째로 넣어버립니다. 그래서 채소 폐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시들어가는 채소를 발견하고 아차 싶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통째로 버리는 일은 거의 없어졌고, 대부분 시들기 전에 볶음이나 국에 털어 넣는 방식으로 소비하게 됐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방향이 맞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느슨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도 가끔 소분을 전혀 안 하는 날이 있습니다. 극도로 지친 날, 몸이 아픈 날에는 그냥 모든 것을 냉장고에 던져 넣고 소파에 쓰러집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자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열 번 중 일곱 번만 해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그 느슨한 기준이 오히려 소분을 4개월 넘게 이어오게 만든 진짜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나니 지속가능성을 얻었습니다.
4개월 후 냉장고와 식비에 생긴 측정 가능한 변화들
2024년 9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 딱 4개월간 이 느슨한 소분 기준을 유지한 결과,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가 몇 가지 생겼습니다. 가장 먼저 변한 건 식재료 폐기 비용이었습니다. 9월에 4만 9천 원이었던 월 폐기 비용이 10월에는 1만 4천 원으로 줄었고, 11월에는 6천 원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완벽한 소분이 아닌 고기만 반으로 나누는 단순한 습관 하나가 만들어낸 변화였습니다. 4개월 동안 절약된 폐기 비용만 합산하면 약 12만 원이었습니다. 배달 음식 주문 횟수도 주 4회에서 주 1회로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냉장고 안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냉동실이 언제 산 건지 모를 식재료들로 가득 차 있어서 뭐가 어디 있는지 파악이 안 됐습니다. 지금은 냉동실에 고기 지퍼백 두세 개, 대파 소분 봉지 하나, 그리고 즉석밥 몇 개 정도만 있습니다. 냉동실 문을 열면 5초 만에 재고 파악이 끝납니다. 이 단순한 변화가 장보기 계획을 세우는 방식도 바꿔놓았습니다. 냉동실에 고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마트에 가니 고기를 중복으로 사는 일이 사라졌고, 그 결과 장보기 비용 자체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가장 예상치 못한 변화는 평일 저녁의 여유로움이었습니다. 퇴근 후 냉동실에서 지퍼백 하나 꺼내 냄비에 넣으면 15분 만에 따뜻한 찌개가 완성됩니다. 예전처럼 파를 씻고 다지는 30분의 전처리 시간이 사라지니, 저녁 8시면 모든 식사가 끝납니다. 매일 저녁 2시간의 여유 시간이 새로 생겨났고, 이 시간 덕분에 수면 시간도 평균 45분 늘어났습니다. 아직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지난주에는 시금치 반 봉지를 냉장고에서 발견하고 버렸습니다. 소분의 신이 되겠다는 목표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다만 귀찮다는 이유로 매달 5만 원 가까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던 사람이, 이제는 그 손실을 6천 원 수준으로 줄이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소분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방법을 바꾸기 전에 기준을 먼저 낮춰보시기를 권합니다. 잘하는 것보다 일단 시작하는 것, 그리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소분 습관을 만드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